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씬 레드 라인 (문단 편집) == 근대 [[영국군]]의 별명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씬 레드 라인/thinredline.jpg|width=100%]]}}}|| || '''《얇고 붉은 선(The Thin Red Line)》'''[br]로버트 깁(Robert Gibb) 작, 1881년[br][[발라클라바 전투]]에서 [[영국 육군]]의 제93(하이랜더)보병연대가 러시아 기병대의 돌격을 저지하고 있다.[* 사실 이 그림은 현실보다 더 가깝게 과장해 그린 것으로, 실제 러시아 기병대는 영국군 전열의 230m 거리까지 밖에 접근하지 못했다.] ||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의 [[레드 코트|붉은 군복]]을 빗댄 별명으로, 얄팍한 선에 불과해 보이는 붉은 병력의 저지선이 결코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국군은 2열 횡대 사격을 선호하였는데, 다른 나라에서 3열이나 그 이상으로 횡대를 구성한 것에 비해 같은 인원수로도 더 가느다랗고 긴 선이 된다. 존 리델 하트가 언급한 최대 횡대가 최대 화력을 보장한다고 한 명제를 충실히 따른 셈이다.[* [[레드 코트]]들이 활약하던 무렵부터 영국군은 명중률보다는 연사속도를 중시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3열로 쏘는 속도를 2열만으로 낼 수 있었다. 적당한 교전거리로 들어서면 어차피 명중률은 거기서 거기라 횡대를 넓게 편 영국군이 더 강한 화력을 퍼부을 수 있었다.] [[발라클라바 전투]]의 한 국면에서 오스만군과 영국군 진영이 수적으로 우세인 러시아군을 상대로 동등하게 싸웠고, 그로 인해 러시아군의 지휘관은 상대가 많은 병력을 숨기고 있다고 착각해(하나도 없었는데도!) 후퇴를 명령했다. 이를 두고 종군기자가 "A thin red streak tipped with a line of steel"이라고 표현했고 거기서 "Thin red line"이라는 말이 나왔다. 피탄시, 특히 대포알에 의한 희생자가 적은 이점이 있고 동시에 더 넓은 사선을 확보해 한번에 더 많은 탄환을 퍼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반면에 부사관의 인원 통제가 더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어 전투의 격화로 사상자가 속출하여 줄에 '구멍'이 생길 때는 전투력이 급락할 위험도 있었다. [[전열보병]] 시대에는 부사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제식이 맞아야 화력이 밀집되어 높은 공격력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군은 평상시 실탄을 사용한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여 통제력의 문제를 극복하였다.[* 다만 기병돌격을 당하는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있긴 있었다. 넓게 퍼지다 보니 대기병 방진을 짜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보병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씬 레드 라인의 단점을 보여주는 예가 워털루 전투의 전초전인 콰트르 브라 전투에서 있었다. 당시 영국 육군의 최정예 보병대중 하나인 왕세자의 근위 자원병 연대가 얇고 긴 종대로 행군 중이었는데 행군중에 그만 프랑스 기병대의 습격을 받고 말았다. 종대가 너무 얇고 길었기에 보병대는 재빠른 방진을 만들지 못했고 결국 급습해온 프랑스 기병대에게 개박살나고 말았다.] 이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부각된 것은 [[워털루 전투]] 후반부이다. 2열 횡대로 늘어선 붉은 색의 영국군은, 박스형으로 행진해오는 파란 옷의 [[프랑스 제국 근위대]]를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창설 이래 돌진이 한번도 막힌 적이 없던 나폴레옹 근위대의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였다. 두 줄에서 퍼부어대는 미친 듯한 [[화망]]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의 영국 고유 업그레이드인 '씬 레드 라인'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